민병대와 과두세력 사이의 동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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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at http://links.org.au/node/4008.]

이후로는 외국의 진보적 매체의 글들을 정기적으로 번역하여 게재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최근 Link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d에 실린 우크라아니 동부지역의 분리그룹 내부 움직임에 대한 러시아 좌파 활동가 보리스 카갈리츠키의 글을 번역하여 싣는다. 번역은 델라님께서 맡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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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다양한 좌파적 견해를 발표해왔다. 이 글들이 반드시 발행인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아래는 모스크바의 Boris Kagarlitsky의 글이다. (Renfrey Clarke 번역)

우크라이나 정부와 노보로시야 Novorossiya 공화국(노보로시야는 ‘신러시아’라는 뜻.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도네츠크 주와 루간스크 주 일대 지역이 모여 결성한 국가) 사이의 전쟁은 점차 교착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양쪽의 자원은 소모되고 있고, 전투 역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인민공화국 측은 자신들보다 더 강력한 우크라이나 키예프 정권의 수많은 군사적 압박을 막아내면서 ‘정부는 승리해야 하지만, 반란의 경우에는 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잘 알려진 원칙에 따라 자신들의 총역량을 가동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악화되는 경제 상황, 키예프 정권 지지자들의 사기 저하, 그리고 정부가 통제하는 영역 내에서 파르티잔 운동의 점진적 발전. 이 모든 상황들은 내전이 남동쪽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8월 중순,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가장 최근 공격이 실패로 끝났다.(키예프의 하계 군사작전에서의 공격) 이전 공격에서는 주요 서양 매체들이 전쟁에 대한 사실 정보들을 하나같이 부정했는데, 이제 갑자기 정부군의 승리에 대한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난 번처럼, 낙관적 전망은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두 번째 공격의 실패는 첫 번째 공격의 시나리오와 완전히 동일했다: 공격은 초반부터 중단되었고, 포위되면서 끝나버렸다. 가상의 승리들은 현실의 재앙으로 바뀌었다. 이미 육지에서 지고 있다면, 전쟁은 정보 공간에서 이길 수 없다.

노보로시야 인민공화국에 대한 긍정적 전망엔 모든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군사 승리의 뒤에서는 정치적, 행정적 위기가 시작되고 있고, 새로운 위험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부군의 공격과 관련된 것보다 더 위험하지 않다면, 덜 심각하지도 않다.

몇 주 동안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의 전체 지도부는 교체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가장 중대한 사태의 전개는 민병대의 군사 지도자, 이고르 스트렐코프(Igor Strelkov)가 축출된 것이었다. 소비에트의 전통에 따라 발표는 “다른 직책을 위한 변경”으로 공표됐다. 이 결정은 스트렐코프가 그의 군대와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에 있을 때 이뤄졌다.

스트렐코프가 지위에서 제거된 것은 7월 초에 자신들에게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혔던 민병대 지도자에 대한 크렘린 세력 일부의 복수가 분명하다.

민병대는 Slavyansk에서의 용감무쌍했던 두 달간의 방어전을 치른 후, 우크라이나 부대의 포위를 돌파하며 도네츠크(이미 Kremlin과 연계된 정치인들이 키예프 정권에게 넘겨줄 계획을 하고 있었던 도시)로 향했다.

그런데 민병대가 도착하면서 권력 구조에서 급진적 숙청이 동반되었다. 아무도 공모자들을 억압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잇달아 사직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별 소란 없이 도시를 떠났다. 그들 중 일부는 모스크바로 출발했고, 다른 일부는 키예프로 떠났다. 이런 흐름은 운동 내 정치적 급진화가 확산되는 배경 속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8월, 민병대의 일반 전사들에 의해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들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 선언되었던 “사회 공화국”이라는 슬로건에 맞춰 기득권 과두세력(올리가르키)들의 재산을 국유화해야 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개혁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비에트 최고회의의 의장직은 당의 공식 지도자 지위에서 물러나게 된 공산주의자 보리스 리트비노프(Boris Litvinov)가 맡았다. 이전 지도자들에 의해 착수되었던 의료 영리화에 반대하는 법이 채택되었고, 소소하지만, 국유화에 반발하는 시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크렘린(Kremlin)과 가까운 정치 전문가들은 러시아 대중매체에서 스트렐코프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촉발시켰다. 모스크바 관료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선동가들의 괴로움은 이해할 만 하다: 그들이 아늑한 사무실에 앉아 계획과 음모를 짜는 동안, 사건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러시아 제국에 대한 향수와 혁명 전의 군주제에 대한 그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급진화 과정에 가장 일조했던 사람은 스트렐코프였다. 이 민병대 지도자가 오직 정직함과 개방적인 태도로 명성이 높았던 것만은 아니다. (모스크바와 키예프에서의 선전과는 심하게 대비되는 그 자신의 어려움과 실패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을 상기하기에 충분하다).

스트렐코프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본능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지지하도록 그를 크게 이끌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크렘린이 추구하는 전략, 즉 노보로시야를 이전 마이단(Maidan.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민주화 시위가 전개되었던 광장과 시위 자체를 지칭)의 2번째 버젼으로 변형시키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지원을 요청하려고 모스크바로 자주 여행을 떠났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대부분은 헛된 여행이었다), 민병대 사령관은 전장에서 그의 군대와 함께 있었다. 실천적으로 보여졌듯이 모스크바 권력의 중심지에 있는 것보다는 이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더 안전했다.

스트렐코프가 어떻게 모스크바에 유혹 당했는지, 무엇이 그에게서 “자발적” 사임을 이끌어냈는지 (만약 그가 성명서에 모두 서명했을 경우)에 대해선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어쩌면 노보로시야의 독립된 영토들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이 완전히 중단된다는 위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외부 지원에 대한 공화국의 의존성은 7월과 8월초 스트렐코프가 제거했던 사람들에 의한 서투른 운영관리의 결과이다. -그들은 후방에서 경제를 조직하는 것과 자원의 분배에 대해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없었거나 거부당했다.

8월 즈음에는 공화국들이 음식과 탄약을 러시아로부터 받지 않는 한 재앙 수준으로 위협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마 이것은 크렘린(Kremlin)파 음모자들이 스트렐코프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종의 지렛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보수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복수를 실행했고, 도네츠크 군사 지도자가 제거되었다. 기득권 세력(올리가르키)들과의 관계가 의심되는 사람들은 일련의 주요 직책들에 임명되었다.

바로 이즈음 모스크바에서 민병대에 의해 도네츠크에서 쫓겨났고 그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정치인, 올레그 챠레프(Oleg Tsarev)가 ‘노보로시야의 새로운 깃발’을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이 깃발은 옛 제국 깃발을 거꾸로 뒤집은 형상이었는데, 이는 명백하게 민병대의 St. Andrew의 십자가에 그려진 붉은 적색 깃발에 대한 대항 균형의 의미가 분명하다.

러시아 언론은 이미 모스크바 관료들과 우크라이나 기득권 과두세력(올리가르키) Rinat Akhmetov 사이에 도달한 합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구체제의 전통에 의해, Kremlin의 관료 정치 체제는 키예프와 서방과의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의 대가로, 독립된 영토를 그의 새로운 신하들에게 제물로 하사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교관 사이의 접촉이 재개되었으며, 남동쪽의 최종적 운명이 걸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의 공격이 실패하고 내부 어려움이 커지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아마 키예프는 거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저자가 고려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도네츠크 주민들의 분위기와 우크라이나와 노보로시야 사람들의 생각이다. 또 러시아 사회로 점차 빠져들고 있는 혁명적 과정의 전체적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쏟아지는 폭탄 아래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있는 민병대 전사들과 활동가들은 모스크바든, 키예프든, 그게 어디가 되었든 외부에서 내리는 결정의 유순한 대리인이 더 이상 아니다.

노보로시야에선, 봉기의 처음 몇 개월 시기에 부각되었던 러시아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동정은 이제 배신과 사보타지를 일삼고 있는 Kremlin체제에 대한 증오로 바뀌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이고르 스트렐코프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현장의 새로운 지도자들 그룹이 많은 방면에서 그를 본보기로 삼고 있지만, 그와는 다르게 훨씬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으로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조직의 음모, 협박 및 조작을 통해, 일정한 전술적 승리를 얻을 수 있고 한명 혹은 몇몇 인물을 지도자의 자리에서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조되면서 점점 힘을 얻고 있는 혁명적 위기를 멈추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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